보고서 - 명대철학-양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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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3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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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때 격물치지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려고 관사에 있는 대나무를 연구[격죽格竹]하였으나 병이 나고 말았다. 정인재, 『양명학의 정신』, 세창출판사, 2014,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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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37세 때 독사와 독충들이 우글거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을 달래며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실존적 상황 하에서 그는 석곽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정인재, 전게서,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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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때 숙사塾師에게 천하에 제일가는 것은 성현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글 짓고 시 쓰는 사장에 몰입하였다가 다시 노장 불교사상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정인재, 전게서, 77-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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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48세에는 의병을 일으켜 반란을 일으킨 영왕 신호를 사로잡았다. 여기서 심즉리心卽理의 사상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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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대 경사에 머물면서 병법을 배웠다. 용장에서 한밤중에 격물치지의 뜻을 크게 깨닫고 성인의 도를 알게 되었다. 나의 본성이 자족한데 이전에 사물에서 도를 구하는 것은 모두 잘못되었다. 40세에서 48세까지 주로 지방에서 일어나는 도적들을 토벌하였고, 이 과정에서 양명은 산속의 도적은 깨트리기 쉬우나 마음속의 도적은 깨트리기 어렵다[파산중적이 파심중적난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고 하였다. 34세 때 담감천과 친교를 맺고 성학을 제창하였다. 그 후 용장의 하급관리로 유배되었다. 18세 때 주자학자 누량을 만나 격물치지학을 듣고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름을 수인으로 바꾸고 난 뒤에 11세 때는 시를 지어 주위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5세까지 말을 하지 못하였다. 유근은 자객을 보내어 양명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양명은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다. 이 작전 중에 몇 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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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름은 수인守仁이고 자는 백안伯安이며 호는 양명陽明이다. 정인재, 전게서,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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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은 명나라 중기 성화成化 8년[1472] 9월 30일 절강성 소홍부 여요현 서운루에서 태어나 가정嘉靖 7년[1528] 11월 29일 57세로 남안南安에서 폐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면서 내 마음이 빛이다[오심광명吾心光明]라고 하였다. 35세 때 간관諫官 대선戴銑의 억울한 옥살이를 변호하는 항소문을 올렸다가 오히려 정장 40대를 맞고[대부분 죽는다] 옥에 갇히었다.